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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더스트:::모래알만큼 칼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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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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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개봉한 <로스트 인 더스트>의 영제는 'Hell Or High water'입니다. 영화에 대사로도 등장하는 이 말의 뜻은,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해도'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유래된 문구입니다. 시종일관 텁텁한 쓴맛을 남기는 줄거리와 귀신같이 들어맞는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압으로 유일한 재산이자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이 은행에 넘어가게 되자, 토비와 태너 형제는 강도를 계획하게 됩니다. 다른 영화들처럼 신나는 BGM과 긴박한 총격씬은 온데간데 없고, 처절하게 생존하는 두 사람만이 남은 영화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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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로 잡히는 황량한 텍사스의 모래 벌판과 어딘가 갑갑해보이는 등장인물들의 표정,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목장과 차, 그리고 은행이 있는 시가지로 영화가 시작된지 몇 분 안에 쉽게 몰입하게 됩니다. 대사가 많거나 묘사가 부산스럽지 않아 더욱 여운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살려고 그랬다, 살려고


영화는 아이러니에서 시작합니다. 어머니가 그들 형제에게 남겨준 농장에는 석유가 묻혀있고 채굴만 한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데, 그 땅을 은행에 담보로 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갑갑한 상황입니다. 실소유권자인 은행의 허락없이는 채굴과 경작이 불가하여 꼭 연체를 갚아야하지만, 가난의 대물림은 쉽게 끊을 수 없는 굴레입니다. 형제는 결국 범죄를 저지르기로 선택하고 은행 강도가 되어 쳐들어갑니다. 주로 보안관이나 경찰이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작은 크기의 은행을 위주로 차곡차곡 돈을 털어모았습니다.

 

서서히 자본주의의 물결이 들이닥치는 시골의 아이러니를 다루기 위한 장치들을 곳곳에 숨겨놓습니다. 일부러 체납을 의도하고 못갚을 돈을 빌려주는 은행 때문에 삶터를 빼앗길 위기에 쳐해있는 형제들의 뒤로 대출 광고가 지나는 것도 그 예시입니다. 극 중에서는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무슨 일이 닥친다해도(Hell or High water), 목요일까지만 갚으세요. 그럼 다 끝이에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대사는 시련이나 어려움을 이겨내야한다는 긍정적인 동기부여로 쓸법하지만, 영화에서는 빚이 있어야 굴러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말로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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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그리는 영화이지만 범죄를 미화한다거나 합리화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말 그대로 그 시대에 정말 있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집중했습니다. 이들을 추적하는 마커스 해밀턴과 알베르토 파커 형사 콤비 또한 정의감에 사로잡힌 완벽히 도덕적인 인물보다는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들로 그려집니다. 결국 모레폭풍 같은 시대에, 인륜과 도덕 따위는 저버리고 살아남기를 택한 형제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그려낸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끝, 시대는 시작


법의 허술한 구멍을 헤쳐가며 살아남던 형제는 과감한 선택을 하고 끝내 형사들과 대치를 하게 됩니다. 형인 태너는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는 토비가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을 끌다가 사망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을 쫒다가 알베르토 파커가 순직하고, 이에 분노한 마커스는 토비를 찾아갑니다. 총을 뽑아드는 대신 토비가 내어주는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왜 파트너를 죽였냐는 말에, 토비는 동문서답 같은 대답을 합니다. 

나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어요. 가난은 전염병 같아서 대를 이어 사람을 괴롭히죠. 하지만 내 아이들은 안됩니다. 더는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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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서로를 당장이라도 총으로 쏠 듯한 긴장감이 흐르지만, 대화는 끝나고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갑니다. 토비는 이야기를 마저 하려거든 시내에 있는 집에 들리라는 말을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만날 일은 전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시대의 뒤로 밀려날 카우보이와 낡고 시대착오적인 레인저는 분명 동류이지만 곧 사라져버릴 개체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지나가는 말 중 하나가 기억에 남습니다. 시추 작업을 하는 토비의 마당을 보던 마커스 형사는 순직한 자기 파트너에게도 가족이 있었으며, 그들의 마당에는 저런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파트너인 알베르토 형사는 코만치족의 후예로, 백인들이 점령하기 전에 아메리카 땅을 휘젓고 다니던 원주민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은 것은 다름아닌 카우보이임을 상기 시켜주는 상징적인 대사였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구시대의 것으로 몰락하고 있다는 것 또한. 영화는 '서부 개척자'로 포장되는 약탈자들에 대한 냉정한 시선과, 범죄의 온상으로 타인의 것을 빼앗고 고지를 점령하려 하던 텍사스의 모습을 씁쓸하게 표현해냈습니다. 구시대의 잔재로 남을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여운이 남고 아릿한 맛이 나는 "로스트 인 더스트(Hell Or High water)"였습니다.

 

by Cyn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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